마트에서 카트를 밀 땐 한참을 돌아다녀도 멀쩡해요. 그런데 계산을 마치고 주차장까지 맨몸으로 걸어가는 그 몇 분이 유독 힘들죠. 종아리가 뻐근하게 조여오고 다리가 저릿해져서 결국 아무 데나 걸터앉게 되고요. 그렇게 좀 쉬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걸을 만해져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 대개 “다리에 힘이 없어졌나” 하고 넘겨요. 그런데 원인이 다리가 아니라 허리에 있는 경우가 꽤 많아요. 척추관협착증이 딱 이런 식으로 시작하거든요.
왜 카트를 밀면 편해질까
답은 자세에 있어요. 척추 한가운데에는 신경다발이 지나가는 통로가 있어요. 이걸 척추관이라고 불러요. 나이가 들면 통로를 둘러싼 뼈와 인대가 조금씩 두꺼워지면서 길이 좁아지는데,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있어요. 척추관의 넓이는 고정된 게 아니라 자세에 따라 바뀐다는 점이에요.
허리를 곧게 펴거나 뒤로 젖히면 통로가 더 좁아져요. 반대로 상체를 앞으로 숙이면 틈이 살짝 벌어지고요. 카트를 밀 때 우리는 손잡이를 잡고 자연스럽게 몸을 앞으로 기울이잖아요. 그 자세가 신경이 지나갈 자리를 만들어 주는 셈이에요. 등산에서 오르막은 그럭저럭 오르는데 평지나 내리막이 더 괴롭다는 분들도 같은 이유예요.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서거나 허리를 편 자세에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앉아서 허리를 구부리면 약 80%가 증상이 누그러진다고 해요. 같은 자료에서 60대 인구의 47.2%가 어느 정도의 협착 소견을 보인다고 하고요.출처: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나이가 들면 흔해지는 변화라는 얘기죠.

허리는 멀쩡한데 다리가 저린 게 이상해요
협착증인데 정작 허리는 별로 안 아픈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더 헷갈려요. 좁아진 통로에 눌리는 건 허리뼈가 아니라 다리로 내려가는 신경이에요. 눌린 곳은 허리인데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는 건 다리인 거죠. 전선이 중간에 눌리면 끝에 달린 전구가 깜빡이는 것과 비슷해요.
그래서 증상이 이렇게 나타나요.
- 조금 걸으면 다리가 저리거나 당겨서 멈춰 서게 됨
- 쪼그려 앉거나 허리를 숙이면 몇 분 만에 풀림
- 다시 걸으면 또 같은 거리쯤에서 반복
- 가만히 앉아 있거나 누워 있을 땐 별 문제 없음
걷다 쉬다를 반복하게 되는 이 패턴을 신경인성 간헐적 파행이라고 불러요. 이름은 딱딱해도 뜻은 단순해요. 걸으면 아프고, 쉬면 낫는다는 거예요.
디스크랑 헷갈리는 지점
둘 다 허리에서 시작해 다리로 내려가는 통증이라 섞어서 생각하기 쉬워요. 갈라지는 지점은 어떤 자세에서 편해지느냐예요.
허리디스크는 앉아 있을 때가 괴로워요. 오래 앉아 있거나 허리를 숙이면 심해지고, 누우면 좀 가라앉죠. 협착증은 정반대예요. 앉으면 살 것 같고, 서서 걸으면 힘들어져요. 그래서 디스크 있는 분은 자꾸 일어나고 싶어 하고, 협착증 있는 분은 자꾸 앉을 자리를 찾아요.
눌리는 것의 정체도 달라요. 디스크는 말랑한 디스크 물질이 밀려 나와 신경을 누르는 거고, 협착증은 뼈나 인대처럼 딱딱해진 조직이 길을 좁히는 거예요. 그래서 디스크는 어느 날 갑자기 오는 편이고, 협착증은 몇 년에 걸쳐 슬금슬금 심해져요.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작년보다 짧아졌다면 그 슬금슬금에 해당해요.
물론 둘이 같이 있는 경우도 있어요. 자가 판단으로 결론 내리기 어려운 이유고요.
이건 미루지 마세요
대부분은 급하게 서두를 일이 아니에요. 다만 아래 신호는 다릅니다.
- 소변이나 대변을 보는 감각이 이상해지거나 조절이 안 될 때
- 다리 힘이 며칠 사이에 눈에 띄게 빠질 때
- 안쪽 허벅지와 사타구니 주변 감각이 둔해질 때
이런 증상은 마미증후군이라고 해서 신경이 심하게 눌렸다는 신호일 수 있어요. 시간을 끌면 손상이 남을 수 있으니 바로 병원에 가세요.

병원에서는 뭘 보나요
정형외과나 신경외과에서 봐요. 재활의학과에서 보기도 하고요.
의외로 가장 중요한 건 검사 장비가 아니라 대화예요. 얼마나 걸으면 아픈지, 쉬면 얼마 만에 풀리는지, 어떤 자세가 편한지. 이 이야기만으로도 방향이 꽤 잡혀요. 그러니 진료 전에 “평지로 몇 분쯤 걸으면 저려온다” 정도는 정리해 가면 좋아요.
여기에 신경 기능을 확인하는 진찰이 더해져요. 감각과 근력, 반사를 봐요. 영상 검사는 필요할 때 붙는 순서예요. X-ray로 뼈의 퇴행 변화를 보고, 신경이나 인대 같은 물렁한 조직까지 봐야 하면 MRI를 찍어요.
치료는 대개 수술이 아닌 쪽부터 시작해요. 활동 조절, 운동, 물리치료, 소염진통제 같은 것들이요. 앞서 인용한 자료에서는 절반 정도가 이런 보존적 치료로 나아진다고 해요. 수술은 신경 증상이 나빠지거나 두세 달 보존적 치료로도 안 될 때 논의해요. 허리가 아프다는 것만으로 수술 대상이 되진 않고요. 물리치료와 도수치료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면 이 글에 정리해 뒀어요.
자주 묻는 질문
Q. 걸으면 아픈데, 그럼 운동을 쉬어야 하나요?
아니에요. 오히려 한 자세로 오래 있는 게 안 좋아요. 허리 근력 운동이나 스트레칭, 수영이 도움이 돼요. 아픈 걸 참고 계속 걷기보다는 저려오기 전에 잠깐 앉았다 가는 식으로 나눠 걷는 게 나아요.
Q. 자전거는 타도 되나요?
자전거는 허리를 앞으로 숙인 자세라 협착증에서는 비교적 편한 편이에요. 걷는 건 10분도 힘든데 자전거는 30분씩 타는 분들이 있는 것도 그래서고요.
Q. 결국 수술까지 가게 되나요?
다 그렇진 않아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상당수는 수술 없이 지내요. 다만 다리 힘이 빠지거나 대소변 문제가 생기면 얘기가 달라져요.
Q.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 있나요?
특별히 가릴 건 없어요. 대신 담배는 요통에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어요.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줄고 있다면
걷다가 자꾸 앉게 된다면, 그걸 그냥 체력이 떨어진 신호로만 읽지 마세요. 앉으면 낫는다는 게 오히려 중요한 단서예요.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조금씩 줄고 있다면 한 번쯤 확인해 보는 게 좋겠어요. 동네에서 가까운 정형외과를 찾아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충분해요.
본 콘텐츠는 일반적인 건강 정보 제공 목적이며, 의료진의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증상이 지속되면 반드시 의료기관을 방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