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 서울은 저녁 6시가 되기 전에 해가 집니다. 6월엔 8시 가까이 떠 있던 해예요. 하지에 14시간 40분쯤이던 낮이 동지엔 9시간 반으로 줄어드니, 반년 사이에 햇빛이 다섯 시간 넘게 사라지는 셈이죠.
이맘때 “가을 탄다”는 말이 나오는 게 우연은 아니에요. 괜히 쓸쓸하고, 퇴근길이 어두워서 기운이 빠지고. 대부분은 거기서 끝납니다. 그런데 해마다 같은 달에 시작해서 봄까지 이어지고, 그동안 잠과 식욕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사람이 있어요. 이쪽은 계절성 우울증이라는 이름이 따로 붙어 있습니다.

가을 타는 것과 어디서 갈릴까요
둘을 가르는 건 기분이 얼마나 가라앉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어디까지 번지느냐예요. 흔히 떠올리는 우울증과도 모양이 꽤 달라서 셋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이렇습니다.
| 가을 타는 것 | 계절성 우울증 | 흔히 아는 우울증 | |
|---|---|---|---|
| 기간 | 며칠, 길어야 한두 주 | 늦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 계절과 상관없이 2주 이상 |
| 잠 | 별 차이 없음 | 늘어요. 자도 자도 졸림 | 줄어드는 쪽이 많음 |
| 식욕 | 그대로 | 늘어요. 빵, 면, 단것이 당김 | 떨어지는 쪽이 많음 |
| 일상 | 할 건 다 함 | 약속을 피하고 일이 밀림 | 일과 관계가 무너짐 |
| 봄이 오면 | 이미 잊었음 | 거짓말처럼 나아짐 | 저절로 풀리지 않음 |
표에서 가운데 칸이 낯설게 느껴졌을 거예요. 우울증이라고 하면 잠을 못 자고 입맛이 없어 살이 빠지는 모습을 먼저 떠올리니까요. 2주라는 기준과 일반적인 우울증 증상은 우울감과 우울증을 구분하는 글에 따로 적어 뒀습니다.
잠은 늘고 빵이 당기는, 거꾸로 오는 우울
겨울형 계절성 우울증은 증상이 반대로 와요. 평소보다 한두 시간을 더 자는데도 아침에 몸이 납처럼 무겁습니다. 주말엔 열 시간 넘게 자고도 낮에 또 눕고요. 본인은 이걸 우울하다고 느끼기보다 “요즘 왜 이렇게 게으르지” 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요.
먹는 것도 달라집니다. 밥보다 빵, 떡, 면, 초콜릿 같은 탄수화물이 유독 당기고, 오후 서너 시쯤 뭔가를 집어 먹어야 버틸 것 같은 느낌이 와요. 그래서 겨울 동안 2~3kg이 붙었다가 봄에 빠지는 걸 몇 해째 되풀이하는 분도 있습니다. 다이어트 의지가 약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사람 만나는 일이 귀찮아지는 것도 같이 옵니다. 약속을 미루고, 메시지 답이 늦어지고, 퇴근하면 곧장 이불로 들어가요. 영어권에서는 이 상태를 겨울잠에 빗대서 설명하는데 꽤 정확한 비유죠. 많이 자고, 많이 먹고, 굴 밖으로 안 나오는 것.
슬픈 기분이 뚜렷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알아두세요. 눈물이 나거나 비관적인 생각이 드는 것보다 무기력, 집중이 안 되는 것, 좋아하던 일이 시들해지는 게 앞에 서요. 그러다 보니 본인도 주변도 “피곤한가 보다”로 넘기기 쉽습니다.

왜 하필 해가 짧아질 때일까
우리 몸의 시계는 눈으로 들어오는 아침 빛에 맞춰 매일 조금씩 시간을 고쳐 잡아요. 해가 늦게 뜨면 이 시계가 뒤로 밀립니다. 몸은 아직 한밤중이라고 여기는데 알람은 7시에 울리는 거예요. 날마다 가벼운 시차를 안고 출근하는 셈이죠.
어두울 때 나오는 멜라토닌도 관련이 있어요. 밤이 길어지면 멜라토닌이 나오는 시간이 늘어나고, 낮까지 졸음이 끌려옵니다. 여기에 햇빛을 덜 받으면 기분을 받쳐주는 세로토닌의 활동이 떨어진다는 연구가 겹쳐요. 탄수화물이 당기는 걸 세로토닌과 엮어 설명하는 가설도 있고요. 다만 어느 하나로 깔끔하게 설명되진 않고, 이 변화에 유독 민감한 체질이 있다고 보는 쪽입니다.
누가 더 잘 겪느냐를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서너 배 많고, 대개 20~30대에 처음 시작돼요. 적도에서 먼 나라일수록 흔합니다. 그리고 꼭 겨울이 아니어도 생겨요. 해를 볼 일이 없는 야간 근무자, 창 없는 사무실이나 반지하에서 지내는 사람에게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곤 합니다.
두 해를 연달아 겪어야 붙는 이름
올해 처음 가을에 가라앉았다고 바로 계절성이라고 하진 않아요. 진단 기준에서는 같은 계절에 시작해 같은 계절에 풀리는 일이 최근 2년 연속으로 있었는지, 그 사이 다른 계절엔 괜찮았는지를 봅니다. 그래서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면 지금 증상만큼이나 작년 이맘때, 재작년 이맘때를 꼼꼼히 물어요.
가기 전에 휴대폰을 한 번 뒤져보면 좋습니다. 작년 11월부터 2월 사이 사진이 유난히 적지 않은지, 운동 앱 기록이 그 무렵 끊기지 않았는지, 배달 주문이 늘지 않았는지. 기억보다 기록이 정확하거든요.
확인할 게 두 가지 더 있어요. 하나는 몸의 병입니다. 피곤하고 춥고 살이 붙는 건 갑상선 기능이 떨어졌을 때와 거의 겹치고, 빈혈도 비슷한 무기력을 만들어요. 그래서 피검사를 같이 하는 일이 많습니다. 붓고 추위를 타는 쪽이 두드러진다면 갑상선이 느려졌을 때의 증상과 비교해 보세요.
다른 하나는 봄이에요. 봄이 되면 그냥 나아지는 정도를 넘어서 잠을 서너 시간만 자도 쌩쌩하고, 말이 빨라지고, 돈을 평소와 다르게 쓴 적이 있다면 꼭 이야기해야 합니다. 양극성장애가 계절을 타는 모습일 수 있고, 그러면 치료 방향이 달라져요.

치료는 약보다 빛이 먼저 나오기도 해요
계절성 우울증에는 다른 우울증에 잘 안 쓰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광치료예요. 1만 럭스 밝기의 광치료기를 아침에 일어나서 30분쯤 쬐는 방식인데, 얼굴을 향해 비스듬히 놓고 그 앞에서 밥을 먹거나 책을 읽으면 됩니다. 맞는 사람은 한두 주 안에 아침이 가벼워지는 걸 느껴요.
1만 럭스가 어느 정도냐면요.
- 거실이나 사무실 조명 아래: 대개 500럭스 이하
- 책상 스탠드 바로 밑: 1,000럭스 안팎
- 흐린 날 바깥: 수천에서 1만 럭스
- 맑은 날 바깥: 5만 럭스 이상
집 안 조명을 다 켜도 흐린 날 바깥에 못 미쳐요. 무드등이나 일반 스탠드를 오래 켜두는 걸로는 대신할 수 없는 이유가 이겁니다. 반대로 말하면 광치료기가 없어도 오전에 20~30분 밖을 걷는 것만으로 꽤 많은 빛이 들어와요. 선글라스 없이, 출근길에 한 정거장 먼저 내리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점심 산책도 좋지만 몸 시계를 당기는 데는 오전 빛이 더 잘 들어요.
광치료기를 사기 전에 진료부터 받길 권해요. 양극성장애가 있으면 빛이 기분을 지나치게 끌어올릴 수 있고, 망막 질환이 있거나 빛에 예민해지는 약을 먹는 분은 눈을 먼저 확인해야 하거든요. 쬐는 시간대를 잘못 잡으면 밤잠이 흐트러지기도 합니다. 증상이 깊으면 인지행동치료나 항우울제를 함께 쓰는데, 이건 진료실에서 정할 일이에요.
비타민D 영양제를 찾는 분도 많습니다. 햇빛이 줄면 비타민D도 떨어지니 그럴듯한데, 영양제로 계절성 우울증이 나아지는지는 연구마다 결과가 엇갈려요. 피검사에서 부족하다고 나오면 채우는 게 맞지만, 그걸로 해결하려고 겨울을 통째로 보내는 건 권하지 않습니다.
봄을 기다리지 말아야 하는 경우
“봄 되면 낫는데 뭘” 하고 버티는 분이 많아요. 틀린 말은 아닌데, 그러면 일 년의 서너 달을 해마다 내주게 됩니다. 십 년이면 삼 년이에요. 게다가 계절성 우울증은 언제 올지 미리 안다는 드문 장점이 있어서, 증상이 시작되기 전인 지금쯤 진료를 받아 두면 겨울을 훨씬 덜 힘들게 넘길 수 있습니다.
아래에 해당하면 계절이 바뀌길 기다리지 마세요.
- 지각이나 결근이 생기고 일이 눈에 띄게 밀린다
- 두 주 넘게 거의 매일 가라앉아 있다
- 작년, 재작년에도 같은 시기에 똑같았다
- 잠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아예 못 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불면증 글 참고)
- 사라지고 싶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항목은 날짜를 잡을 일이 아니라 오늘 연락할 일이에요. 자살예방상담전화 109는 24시간 받습니다. 가까운 병원은 정신건강의학과 목록에서 찾아보세요. 초진은 예약이 밀리는 곳이 많으니 11월이 되기 전에 전화해 두는 게 낫습니다.
본 콘텐츠는 일반적인 건강 정보 제공 목적이며, 의료진의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증상이 지속되면 반드시 의료기관을 방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