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떨림으로 신경과에 가면 의사가 제일 먼저 묻는 건 “얼마나 심하게 떨리세요”가 아닙니다. “언제 떨리세요”예요. 국을 뜰 때인지, TV 보면서 무릎에 손을 올려놨을 때인지. 이 대답 하나로 절반쯤은 방향이 잡힙니다.
손이 떨리기 시작하면 대부분 파킨슨병부터 떠올리고 겁을 먹는데, 실제 진료실에서는 다른 이름이 훨씬 자주 나옵니다. 아래 세 장면 중에 본인 손이 어디에 가까운지 먼저 골라보세요.

장면 하나. 잔을 들거나 젓가락질할 때 떨려요
가만히 있을 땐 멀쩡합니다. 그런데 소주잔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면 잔이 달달 떨리고, 국물을 숟가락으로 뜨면 입에 오기 전에 반은 흘려요. 결혼식 방명록에 이름 쓸 때, 남들 앞에서 서명할 때 유독 심해지고요.
이 패턴이면 본태성 떨림(특별한 원인 병 없이 떨림 자체만 있는 상태)일 가능성이 큽니다. 손떨림 원인 중에 가장 흔해요. 65세 넘으면 100명 중 너덧 명꼴로 있다고 알려져 있고, 20~30대에 시작하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특징을 몇 가지 적어보면 이래요.
- 양손이 다 떨립니다. 한쪽이 좀 더 심할 수는 있어도 한 손만 떨리는 경우는 드물어요.
- 부모나 형제 중에 비슷하게 손을 떠는 사람이 있는 경우가 절반쯤 됩니다. “우리 아버지도 그러셨어요”라는 말이 진료실에서 자주 나와요.
- 술을 한두 잔 마시면 떨림이 잠깐 줄어듭니다. 그래서 회식 첫 잔이 제일 힘들고 뒤로 갈수록 편해졌다는 분이 많아요.
- 손 말고 고개가 도리도리하듯 흔들리거나 목소리가 떨리는 분도 있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아주 천천히 심해지는 편이고, 수명이나 다른 신체 기능에 영향을 주는 병은 아닙니다. 다만 “별거 아니다”라고 넘기기엔 당사자가 겪는 불편이 작지 않아요. 사람 만나는 자리를 피하게 되는 분들이 꽤 있거든요.
장면 둘. 가만히 둔 손이 떨려요
반대 경우입니다. 소파에 앉아 무릎 위에 손을 올려놓고 드라마를 보는데, 한쪽 손이 혼자 떨리고 있어요. 엄지와 검지가 뭔가를 비비듯, 환약을 굴리듯 움직입니다. 그런데 리모컨을 집으려고 손을 뻗으면 그 순간엔 떨림이 멎어요. 본인보다 옆에 앉은 가족이 먼저 알아채는 경우가 많습니다.
파킨슨병에서 보이는 떨림이 이런 모양입니다. 쓸 때가 아니라 쉴 때 떨리고, 한쪽에서 시작해요. 오른손이 먼저 떨리고 한참 지나서 오른발, 그다음에야 왼쪽으로 넘어가는 식입니다.
그런데 파킨슨병은 떨림보다 “느려짐”이 본체예요. 그래서 신경과에서는 떨림 말고 아래 것들을 같이 봅니다.
떨림 말고 같이 살펴볼 것들
단추 채우는 데 시간이 전보다 오래 걸려요. 걸을 때 한쪽 팔만 덜 흔들립니다. 글씨가 쓰다 보면 점점 작아져서 줄 끝에 가면 깨알만 해져요. 표정이 줄어서 “요즘 화났냐”는 말을 듣고요. 떨림이 시작되기 몇 년 전부터 냄새를 잘 못 맡았거나, 자다가 꿈꾸는 대로 소리를 지르고 팔다리를 휘둘렀거나, 변비가 심해졌다는 분도 많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손은 떨리는데 걸음도 동작도 글씨도 전과 같다면 파킨슨병 쪽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지는 거죠. 파킨슨병 환자 서넛 중 한 명은 떨림이 아예 없기도 합니다. 떨림 하나만 놓고 이 병을 판단하지 않는 이유예요.
장면 셋. 어떤 날만 떨려요
평소엔 괜찮은데 커피를 석 잔째 마신 오후, 밤새운 다음 날, 발표 직전, 끼니를 거르고 오후 4시쯤. 이럴 때만 손끝이 잘게 떨린다면 병이라기보다 누구에게나 있는 생리적 떨림이 커진 겁니다. 사람 손은 원래 눈에 안 보일 만큼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데 카페인, 피로, 긴장, 저혈당이 그 폭을 키워요. 원인이 사라지면 같이 가라앉습니다.
그런데 이 “잘고 빠른 떨림”이 날을 안 가리고 몇 주째 이어진다면 두 가지를 확인해 보세요.
하나는 갑상선입니다. 갑상선 호르몬이 넘치면 손이 떨리고,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빨리 뛰고, 더위를 못 참고, 잘 먹는데 살이 빠져요. 피검사 한 번으로 확인됩니다. 갑상선 기능 항진과 저하의 차이는 따로 정리해 둔 글이 있어요.
다른 하나는 약 봉투예요. 천식이나 기관지염에 쓰는 기관지 확장제, 일부 항우울제와 기분조절제, 뇌전증 약, 스테로이드가 떨림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자주 걸리는 게 위장약이에요. 속이 더부룩할 때 처방받는 위장운동 촉진제 중 일부는 오래 먹으면 손이 떨리고 동작이 느려지는, 파킨슨병과 아주 닮은 증상을 만듭니다. 연세 있는 분들이 여러 병원에서 약을 받다 보면 이런 일이 생겨요. 이 경우는 원인 약을 정리하면 대개 몇 달 안에 좋아지는데, 혼자 판단해서 끊지는 마시고 먹는 약을 전부 들고 병원에 가보세요.
종이 한 장으로 해보는 확인
A4 용지와 볼펜을 준비하세요. 손목을 바닥에 대지 말고 띄운 채로, 가운데서부터 바깥으로 달팽이 모양 나선을 그립니다. 양손 다 해보세요. 그 아래에 “오늘 날씨가 참 좋습니다” 같은 문장을 한 줄 길게 써봅니다.
본태성 떨림이면 나선의 선이 톱니처럼 울퉁불퉁해지고, 글씨는 크기는 그대로인데 획이 흔들려요. 파킨슨병 쪽이면 선 자체는 비교적 매끈한데 나선이 촘촘하고 작게 말리고, 글씨는 뒤로 갈수록 작아집니다.
물론 이걸로 진단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날짜를 적어서 보관해 두면 쓸모가 있어요. 석 달 뒤, 반년 뒤에 같은 걸 그려서 나란히 놓으면 진행 여부가 눈에 보이고, 진료실에 들고 가면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빠릅니다. 떨릴 때 가족에게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어달라고 하는 것도 좋아요. 이상하게 병원만 가면 안 떨리거든요.

신경과에 가면 뭘 하나요
생각보다 기계를 많이 안 씁니다. 대부분은 의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진찰이에요.
양팔을 앞으로 나란히 뻗고 버텨보라고 합니다. 검지로 자기 코와 의사 손가락을 번갈아 찍게 하고요. 엄지와 검지를 빠르게 붙였다 뗐다 시켜보는데, 이때 동작이 점점 작아지고 느려지는지를 봅니다. 의사가 손목과 팔꿈치를 잡고 돌려보면서 뻣뻣하게 걸리는 느낌이 있는지 확인하고, 진료실 복도를 걸어보라고도 해요. 물 따르기나 나선 그리기를 시키는 곳도 있습니다.
여기에 갑상선 기능을 포함한 피검사를 하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뇌 MRI를 찍습니다. 진찰만으로 본태성 떨림과 파킨슨병이 잘 안 갈릴 때는 도파민 신경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보는 PET 검사를 하기도 해요. 모든 사람이 다 받는 검사는 아닙니다.

본태성 떨림으로 나왔을 때 다들 궁금해하는 게 “그럼 약 먹어야 하나요”인데, 떨림이 생활을 얼마나 방해하느냐에 달렸습니다. 불편이 크지 않으면 카페인 줄이고 잠 챙기면서 지켜보기만 하는 분도 많아요. 식사나 글씨, 직업에 지장이 생기면 그때 약을 의논합니다. 약으로 조절이 안 될 만큼 심한 일부에서는 수술이나 초음파를 이용한 시술까지 가기도 하고요. 파킨슨병이라면 부족해진 도파민을 보충하는 약물 치료가 중심이 되는데, 초기에 시작할수록 일상을 오래 유지하기 좋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마그네슘 먹으면 손떨림이 좋아지나요
검색하면 영양제 얘기가 제일 먼저 나오지만, 마그네슘이 본태성 떨림이나 파킨슨병의 떨림을 줄여준다는 근거는 뚜렷하지 않습니다. 식사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마그네슘 부족으로 손을 떠는 일도 드물고요. 영양제를 몇 달 먹어보느라 진료가 늦어지는 쪽이 더 손해예요. 눈꺼풀 떨림과 마그네슘 이야기도 사정이 비슷합니다.
술 마시면 덜 떨리는데, 그럼 마셔도 되나요
본태성 떨림이 술에 잠깐 가라앉는 건 사실이에요. 문제는 술이 깨면서 떨림이 전보다 세게 돌아온다는 겁니다. 중요한 자리 앞두고 한 잔씩 하던 게 습관이 돼서 음주량이 느는 분들이 실제로 있어요. 떨림을 누르는 용도로 술을 쓰지는 마세요.
본태성 떨림이 나중에 파킨슨병으로 바뀌나요
둘은 서로 다른 병이고, 하나가 시간이 지나 다른 하나로 변하는 관계는 아닙니다. 다만 본태성 떨림이 있던 사람에게 나이 들어 파킨슨병이 따로 생기는 일은 있고, 그 빈도가 일반 인구보다 조금 높다는 연구도 있어요. 수십 년 똑같던 떨림의 모양이 달라졌다면, 가령 쉴 때도 떨리기 시작했거나 걸음이 느려졌다면 다시 진찰을 받아보세요.
자식한테 유전되나요
본태성 떨림은 가족 안에서 내려오는 경향이 뚜렷한 편입니다. 부모 한쪽에 있으면 자녀에게도 나타날 가능성이 꽤 있어요. 그렇다고 미리 할 수 있는 검사나 예방법이 있는 건 아니어서, 알고만 있다가 불편해지면 그때 진료를 받으면 됩니다. 파킨슨병은 대부분 유전과 상관없이 생기고요.
배고플 때 손이 떨리는 건 당뇨인가요
끼니를 걸러서 떨리고 식은땀이 나다가 뭘 먹으면 몇 분 만에 가라앉는 건 혈당이 떨어졌을 때 몸이 보이는 정상 반응에 가깝습니다. 그 자체로 당뇨라고 보지는 않아요. 다만 당뇨약이나 인슐린을 쓰는 중에 이런 일이 잦다면 약 조절이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 있으니 주치의에게 꼭 알리세요. 검진에서 혈당이 애매하게 나왔던 분은 공복혈당 100~125 구간 글을 같이 보셔도 좋습니다.
이럴 땐 기다리지 마세요
몇 달, 몇 년에 걸쳐 생긴 떨림은 예약 잡고 천천히 가도 됩니다. 아래는 사정이 달라요.
어제까지 없던 떨림이 갑자기 한쪽 팔다리에 생기면서 힘이 빠지거나, 말이 어눌해지거나, 입꼬리가 처진다면 뇌졸중일 수 있습니다. 이때는 신경과 예약이 아니라 119예요. 그리고 40세 전에 시작된 떨림, 몇 주 사이에 눈에 띄게 심해지는 떨림, 한쪽만 떨리는 떨림은 원인을 확인해 두는 게 좋으니 가까운 신경과에 한번 가보세요. 갈 때는 나선 그린 종이, 떨리는 영상, 먹는 약 목록. 이 세 가지면 충분합니다.
본 콘텐츠는 일반적인 건강 정보 제공 목적이며, 의료 전문가의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증상이 지속되면 반드시 의료기관을 방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