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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은 정상이라는데 녹내장이래요, 한국에선 이게 흔한 쪽입니다

⚠️ 이 글은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는 전문 의료인과 상담하세요.

건강검진 결과지 안과 항목에 낯선 문장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시신경유두 함몰 확대 소견, 녹내장 의심. 안과 진료 요망.” 눈은 멀쩡히 잘 보이는데 말이죠. 그래서 안과에 갔더니 안압을 재보고는 정상이라고 해요. 여기까지 듣고 마음을 놓으려는 순간, 정밀검사를 해보자는 말이 이어집니다.

안압이 정상인데 왜 녹내장 검사를 더 하느냐. 이 질문을 진료실에서 정말 많이들 하십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조합이 이상한 게 아니라 오히려 흔한 쪽이에요.

안압계는 녹내장을 재는 기계가 아니에요

녹내장은 안압이 높은 병이 아니라 시신경이 망가지는 병입니다. 눈에서 본 걸 뇌로 보내는 신경 다발이 조금씩 죽어가고, 그만큼 시야가 바깥쪽부터 사라지는 거예요. 안압은 그 신경을 망가뜨리는 여러 원인 중 하나일 뿐이고요.

그러니 안압이 10에서 21 사이라는 정상 범위에 들어 있어도 시신경은 얼마든지 상할 수 있습니다. 이걸 정상안압녹내장이라고 불러요. 이름부터가 그렇죠. 안압은 정상인데 녹내장이라는 뜻이니까요.

왜 정상 안압에서 신경이 상하느냐는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시신경으로 가는 혈류가 약하다거나, 신경 자체가 압력에 유독 약한 사람이 있다거나, 그 사람에게는 15도 높은 압력일 수 있다거나. 이런 설명이 같이 거론돼요. 확실한 건 하나입니다. 안압 정상이라는 말이 녹내장 아니라는 말과 같지 않다는 것.

한국 사람은 열에 일곱이 이쪽입니다

서양에서 녹내장이라고 하면 대개 안압이 높은 형태를 떠올립니다. 한국은 사정이 달라요. 충남 남일면 주민을 대상으로 한 국내 역학조사에서 40세 이상 개방각녹내장 유병률은 3.5%였는데, 그중 77%가 안압이 정상 범위였습니다. 열 명 중 일곱 명 넘게가 정상안압형이었던 셈이에요. 일본이나 중국 자료도 비슷한 방향이고요.

출처: Kim YK 외, “Normal-tension Glaucoma Management: A Survey of Glaucoma Sub-specialists in Korea”, Korean Journal of Ophthalmology, 2020. pmc.ncbi.nlm.nih.gov

이 숫자가 뜻하는 게 있습니다. 안압만 재고 돌아가면 한국 녹내장 환자 대부분을 놓친다는 거예요. 그래서 건강검진에 안저 촬영, 그러니까 눈 안쪽 사진 찍는 항목이 들어가 있는 겁니다. 안압계가 못 잡는 걸 시신경 사진이 잡아내거든요. 결과지에 찍힌 “녹내장 의심” 문구는 대개 이 사진에서 나옵니다.

20대, 30대가 안과에서 이 말을 듣는 이유

녹내장은 나이 든 사람 병이라는 인상이 강한데, 요즘 안과에서는 젊은 환자가 드물지 않습니다. 배경에 근시가 있어요.

근시가 심하면 안구가 앞뒤로 길어집니다. 눈 뒤쪽 벽이 늘어나면서 시신경이 빠져나가는 자리가 얇아지고 비스듬해져요. 구조적으로 약해진 자리라 같은 압력에도 신경이 먼저 상합니다. 고도근시, 대략 -6디옵터를 넘는 눈은 녹내장 위험이 두세 배 높다는 보고가 꾸준히 있고요. 어릴 때부터 안경을 두껍게 썼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한 번은 봐두는 편이 낫습니다.

라식이나 라섹을 한 눈은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수술로 각막을 깎아 얇아지면 안압계가 실제보다 낮은 숫자를 내요. 안압계는 각막을 눌러서 재는 장비라 각막이 얇을수록 덜 눌러도 되니까요. 실제 안압은 18인데 측정치는 13으로 나오는 식입니다. 그러니 시력교정술을 받은 사람은 안압 수치를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되고, 각막 두께를 같이 재서 보정해야 해요. 수술받은 병원에서 수술 전 각막 두께 기록을 받아두면 나중에 쓸모가 있습니다.

안경을 쓴 젊은 남성이 스마트폰 화면을 가까이 들여다보는 모습

정밀검사 결과지에서 볼 세 줄

녹내장 정밀검사라고 하면 대개 세 가지를 합니다. 검사 이름은 낯설어도 결과지에서 보는 건 결국 세 줄이에요.

시신경유두 함몰비, C/D ratio
시신경이 눈에서 빠져나가는 자리를 위에서 찍으면 도넛처럼 보입니다. 가운데 움푹한 부분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이 숫자예요. 0.3에서 0.4 정도가 흔하고, 0.6을 넘거나 양쪽 눈이 0.2 이상 차이 나면 눈여겨봅니다. 다만 타고나기를 크게 생긴 사람도 있어서 이 숫자 하나로 결론 내지는 않아요.
망막신경섬유층 두께, OCT
빛으로 눈 안쪽 단면을 찍어 신경 다발 두께를 재는 검사입니다. 결과지가 초록, 노랑, 빨강으로 색칠돼 나와요. 같은 나이대 평균보다 얇은 구역이 노랗거나 빨갛게 표시됩니다. 시야가 멀쩡한 단계에서도 여기서는 먼저 티가 나는 경우가 많아서, 초기 녹내장을 잡는 데 가장 기대는 검사예요.
시야검사, MD 값
불빛이 깜빡일 때 버튼을 누르는 그 지루한 검사입니다. 결과지에서 볼 건 MD, 평균편차예요. 0에 가까우면 정상이고 마이너스로 내려갈수록 시야가 많이 빠진 상태입니다. -6 안쪽이면 초기, -12를 넘어가면 진행된 쪽으로 봅니다. 처음 하면 요령이 없어 실제보다 나쁘게 나오기도 해서, 첫 결과가 안 좋아도 두세 번 반복해 확인하는 게 보통이에요.

여기에 각막 두께 측정과 전방각경검사, 그러니까 눈 안 배수구 형태를 들여다보는 검사가 붙습니다. 검사 전체가 한 시간 남짓이고 동공을 키우는 약을 넣으면 몇 시간 눈부시니까, 그날은 운전을 남에게 맡기는 게 편해요.

잘 보이는데 왜 안약을 넣어야 하나

정밀검사 끝에 초기 녹내장이라는 말을 듣고도 실감이 안 나는 분이 많습니다. 당연해요. 안 보이는 데가 없거든요.

이유는 뇌에 있습니다. 시야 한쪽이 비면 뇌가 반대쪽 눈 정보와 주변 정보로 그 자리를 메워버려요. 그래서 시야의 30~40%가 빠질 때까지도 본인은 모릅니다. 계단에서 자꾸 헛디디거나, 운전하다 옆 차선 차를 뒤늦게 보거나, 걷다가 어깨를 자주 부딪히는 정도가 되어야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죠. 그 시점이면 이미 상당히 진행된 뒤입니다.

그리고 죽은 시신경은 돌아오지 않아요. 녹내장 치료는 나빠진 걸 되돌리는 게 아니라 지금 상태에서 멈추는 게 목표입니다. 안압이 정상인데도 안압을 더 낮추는 안약을 쓰는 건, 정상 범위 안에서도 압력을 30% 정도 더 떨어뜨리면 진행이 눈에 띄게 느려진다는 게 확인돼 있어서예요. 그 사람 눈에는 정상 안압도 부담이었던 거죠.

안약은 하루 한두 번, 평생입니다. 혈압약이나 당뇨약과 같은 개념이에요. 증상이 없으니 빼먹기 쉬운데, 빼먹는 날이 쌓이면 그만큼 시야가 깎여 나갑니다. 넣는 시간을 양치질처럼 고정해두는 분들이 오래 잘 이어가더군요.

안압을 슬쩍 올리는 자세들

정상안압녹내장이라도 안압이 오르는 상황은 피하는 게 맞습니다. 의외로 생활 속에 그런 자세가 꽤 있어요.

  • 머리가 심장보다 낮아지는 자세. 물구나무, 요가의 거꾸로 동작, 헬스장에서 벤치를 기울여 하는 운동
  • 엎드려 자거나 한쪽 눈이 베개에 눌리는 자세
  • 넥타이나 셔츠 목 단추를 꽉 조이는 것
  • 물을 한 번에 1리터 가까이 벌컥 마시는 습관. 조금씩 나눠 마시면 괜찮아요
  • 트럼펫이나 색소폰처럼 힘껏 불어야 하는 관악기
  • 담배. 시신경 혈류를 직접 떨어뜨립니다

커피는 한두 잔 정도면 크게 신경 안 써도 됩니다. 걷기나 가벼운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은 오히려 안압을 낮추는 쪽이라 권장돼요.

한 가지 더. 정상안압녹내장은 밤에 혈압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혈압약을 저녁에 드시는 분이라면 녹내장 진단 사실을 내과 의료진에게도 알려두세요. 복용 시간을 조정할지 판단하는 데 필요한 정보거든요. 본인이 임의로 바꾸지는 마시고요.

검진은 언제부터, 얼마나 자주

특별한 위험 요인이 없으면 40세부터 1~2년에 한 번 안저 사진과 안압을 봅니다. 아래에 해당하면 그보다 일찍, 20대 후반이나 30대부터 시작하세요.

  • 부모나 형제 중에 녹내장 환자가 있을 때
  • -6디옵터를 넘는 고도근시일 때
  • 라식, 라섹을 받았을 때
  • 당뇨가 있을 때
  • 편두통이 잦거나 손발이 유난히 찰 때

건강검진 결과지에 “녹내장 의심”이 찍혔다면 그게 검진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는 뜻이지 확진은 아닙니다. 정밀검사 가보면 절반 이상은 시신경이 원래 그렇게 생긴 걸로 끝나요. 다만 나머지가 있으니 미루지는 마세요. 눈앞에 까만 점이 떠다니는 증상으로 안과에 갔다가 녹내장이 같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어서, 안저를 볼 일이 있을 때 시신경도 같이 봐달라고 하면 됩니다. 관련해서는 눈앞에 까만 점이 떠다닐 때 글도 함께 읽어보세요.

녹내장 정밀검사가 가능한 곳을 찾는다면 가까운 안과 찾아보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 콘텐츠는 일반적인 건강 정보 제공 목적이며, 의료 전문가의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증상이 지속되면 반드시 의료기관을 방문하세요.